청 왕조
RootsLore에서 청 왕조 탐색 — 세대를 넘나드는 출생, 결혼, 이주의 살아있는 타임랩스 지도.
이 가계도의 사람들
- 탁시 · 1543–1583 · Hetu Ala, China → Gure, China — 아이신기오로 가문의 여진 추장이자 누르하치의 아버지로, 명의 원정 중 구러성 포위전에서 전사하였다. 그 죽음이 아들로 하여금 여진 통일의 길로 나서게 하였다. 사후 선황제(선조)로 추존되었다.
- 누르하치 · 1559–09/30/1626 · Hetu Ala, China → Shenyang, China — 왕조의 창건자로, 여진 부족들을 통일하고 팔기제로 편성하였으며 1616년 후금을 세웠다(재위 1616~1626). 사후 묘호는 태조이며, 그 혈통은 청으로서 중국을 정복하게 된다.
- 예허나라몽고저저 · 1575–10/31/1603 · Yehe, China → China — 누르하치의 정비로 예허나라 가문 출신이며 홍타이지의 어머니이다. 사후 효자고황후로 추존되었다.
- 홍타이지 · 11/28/1592–09/21/1643 · Hetu Ala, China → Shenyang, China — 누르하치의 여덟째 아들이자 두 번째 군주(재위 1626~1643)로, 1636년 국호를 청, 민족명을 만주로 고쳐 후계자들이 베이징에 입성할 기틀을 닦았다. 사후 묘호는 태종이다.
- 보르지기트붐부타이 · 03/28/1613–01/27/1688 · Khorchin, China → Beijing, China — 홍타이지의 호르친 몽골 출신 비로 순치제의 어머니이다. 태황태후로서 조정을 이끌고 손자 강희제를 가르쳤다. 사후 효장문황후로 추존되었다.
- 순치제 · 03/15/1638–02/05/1661 · Shenyang, China → Beijing, China — 이름은 복림. 홍타이지의 아홉째 아들로, 1644년 만주가 입관한 뒤 베이징에서 통치한 최초의 청 황제이다(재위 1643~1661). 사후 묘호는 세조이다.
- 퉁기야씨 · 1640–03/20/1663 · China → Beijing, China — 순치제의 비로 퉁기야 가문 출신이며 강희제의 어머니이다. 사후 효강장황후로 추존되었다.
- 강희제 · 05/04/1654–12/20/1722 · Beijing, China → Beijing, China — 이름은 현엽. 순치제의 셋째 아들로, 재위 61년에 이르러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래 재위한 황제이다(1661~1722). 청의 통치를 공고히 하였으나, 황태자의 폐위가 아들들 사이의 치열한 후계 다툼을 불러왔다. 사후 묘호는 성조이다.
- 우야씨 · 04/28/1660–06/25/1723 · China → Beijing, China — 강희제의 비로 우야 가문 출신이며 옹정제의 어머니이다. 사후 효공인황후로 추존되었다.
- 윤잉 · 06/06/1674–01/27/1725 · Beijing, China → Beijing, China — 강희제의 둘째 아들로, 청대에 유일하게 정식으로 책봉된 황태자이다. 두 번 세워지고 두 번 폐위되었으며, 그 몰락이 강희제 아들들 사이의 후계 다툼을 일으켜 끝내 넷째 아들인 훗날의 옹정제가 승리하였다.
- 옹정제 · 12/13/1678–10/08/1735 · Beijing, China → Beijing, China — 이름은 윤진. 강희제의 넷째 아들(재위 1722~1735)이다. 정력적인 통치자로 권력을 중앙에 집중하고 재정을 개혁하여 아들 건륭제에게 가득 찬 국고를 물려주었다. 사후 묘호는 세종이다.
- 니오후루씨 · 11/05/1692–03/02/1777 · China → Beijing, China — 옹정제의 비로 니오후루 가문 출신이며 건륭제의 어머니이다. 수십 년간 황태후로 존숭되었고 사후 효성헌황후로 추존되었다.
- 건륭제 · 09/25/1711–02/07/1799 · Beijing, China → Beijing, China — 이름은 홍력. 옹정제의 넷째 아들(재위 1735~1796)이다. 그의 치세에 청은 최대의 판도와 부를 누렸다. 조부 강희제의 재위 연수를 넘지 않으려 60년 만에 양위하였으나 죽을 때까지 실권을 쥐고 있었다. 사후 묘호는 고종이다.
- 위가영비 · 10/23/1727–02/28/1775 · China → Beijing, China — 건륭제의 총비로 위가 가문 출신이며 가경제의 어머니이다. 사후 효의순황후로 추존되었다.
- 가경제 · 11/13/1760–09/02/1820 · Beijing, China → Chengde, China — 이름은 옹염. 건륭제의 열다섯째 아들(재위 1796~1820)이다. 총신 화신의 부패로 속이 빈 제국을 물려받아 그를 숙청하였다. 피서지 청더에서 붕어하였다. 사후 묘호는 인종이다.
- 히타라씨 · 10/02/1760–03/05/1797 · China → Beijing, China — 가경제의 정비로 히타라 가문 출신이며 도광제의 어머니이다. 사후 효숙예황후로 추존되었다.
- 도광제 · 09/16/1782–02/25/1850 · Beijing, China → Beijing, China — 이름은 민녕. 가경제의 둘째 아들(재위 1820~1850)이다. 그의 치세는 제1차 아편전쟁과 홍콩을 할양한 1842년 난징 조약으로 꺾였으며, 왕조의 긴 쇠퇴가 시작되었다. 사후 묘호는 선종이다.
- 니오후루씨(전) · 03/24/1808–02/13/1840 · China → Beijing, China — 도광제의 황후로 니오후루 가문 출신이며 함풍제의 어머니이다.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사후 효전성황후로 추존되었다.
- 함풍제 · 07/17/1831–08/22/1861 · Beijing, China → Chengde, China — 이름은 혁저. 도광제의 넷째 아들(재위 1850~1861)이다. 그의 치세는 태평천국의 난과 제2차 아편전쟁으로 점철되었다. 영불 연합군의 원명원 약탈을 피해 청더로 달아났고 그곳에서 붕어하였다. 사후 묘호는 문종이다.
- 예허나라서태후 · 11/29/1835–11/15/1908 · Beijing, China → Beijing, China — 함풍제의 비이자 동치제의 어머니이다. 서태후로서 거의 반세기 동안 사실상 중국을 통치하였으며(1861~1908), 섭정의 권한을 자신의 손에 쥐기 위해 두 차례 어린 황제를 골라 세웠다.
- 혁현 · 10/16/1840–01/01/1891 · Beijing, China → Beijing, China — 도광제의 일곱째 아들이자 순친왕이다. 서태후의 매제로서 광서제의 아버지이자 부의의 할아버지이며, 동치제가 후사 없이 붕어한 뒤 황위가 이 방계를 통해 이어졌다.
- 예허나라완정 · 1841–06/18/1896 · Beijing, China → Beijing, China — 순친왕(혁현)의 부인이자 서태후의 여동생으로 광서제의 어머니이다. 서태후가 그 아들을 후계로 택한 데에는 황위 계승을 자신의 예허나라 가문 안에 두려는 의도도 있었다.
- 동치제 · 04/27/1856–01/12/1875 · Beijing, China → Beijing, China — 이름은 재순. 함풍제와 서태후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들(재위 1861~1875)이다. 열여덟에 천연두로 후사 없이 붕어하여 본계의 황통이 끊겼고, 어머니는 방계에서 후계자를 들일 수밖에 없었다. 사후 묘호는 목종이다.
- 광서제 · 08/14/1871–11/14/1908 · Beijing, China → Beijing, China — 이름은 재첨. 순친왕의 아들로 함풍제의 후사로 입적되어 세 살에 서태후에 의해 즉위하였다(재위 1875~1908). 1898년 무술변법 이후 서태후에게 궁중에 유폐되었고, 그녀보다 하루 먼저 붕어하였는데 아마도 비소 중독이었을 것이다. 사후 묘호는 덕종이다.
- 재풍 · 02/12/1883–02/03/1951 · Beijing, China → Beijing, China — 순친왕(혁현)의 아들로 제2대 순친왕이자 부의의 아버지이다. 1908년부터 어린 아들을 위해 섭정왕을 맡았으며, 1911년 혁명이 왕조를 쓸어버릴 때까지 이어졌다.
- 과이가유란 · 1884–1921 · Beijing, China → Beijing, China — 섭정왕 재풍의 부인으로 과얼가 가문 출신이며 권신 영록의 딸이다. 마지막 황제 부의의 어머니이다.
- 부의 · 02/07/1906–10/17/1967 · Beijing, China → Beijing, China — 선통제이자 중국 마지막 황제이다. 두 살에 즉위하여 동치제와 광서제 양쪽의 후사로 입적되었고, 1912년 2월에 퇴위하였다(재위 1908~1912). 이후 일본이 세운 괴뢰국 만주국의 원수가 되었으며, 만년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의 평범한 시민으로 베이징에서 세상을 떠났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