송 왕조
RootsLore에서 송 왕조 탐색 — 세대를 넘나드는 출생, 결혼, 이주의 살아있는 타임랩스 지도.
이 가계도의 사람들
- 조홍은 · 899–956 · Zhuozhou, China → Kaifeng, China — 후주의 장수이자 송을 세운 태조와 태종의 아버지. 사후 선조 황제로 추존되어 황실 조씨의 시조로 받들어졌다.
- 두태후 · 902–961 · Kaifeng, China — 조홍은의 아내이자 태조와 태종의 어머니. 전승에 따르면 금궤지맹, 곧 둘째 아들에게 제위를 잇게 하기로 한 임종의 약속을 남겼다 하며, 이는 태종 즉위의 근거로 여겨졌다.
- 태조 · 03/21/927–11/14/976 · Luoyang, China → Kaifeng, China — 송의 건국자(재위 960~976년). 진교병변에서 군사들에 의해 추대되어 제위에 올라 중원의 대부분을 다시 통일했으며, 연회에서 여러 장수의 병권을 거두니 이른바 배주석병권으로 알려졌다. 사후 묘호는 태조.
- 태종 · 11/20/939–05/08/997 · Kaifeng, China → Kaifeng, China — 태조의 아우로 976년에 뒤를 이었다(재위 976~997년). 궁중의 의문인 촉영부성의 의혹이 따라다닌다. 통일을 완성했으나 북방 수복의 원정에는 실패했다. 사후 묘호는 태종.
- 진종 · 12/23/968–03/23/1022 · Kaifeng, China → Kaifeng, China — 태종의 아들(재위 997~1022년). 요의 침입 뒤 1004년 전연지맹을 맺어 해마다 바치는 세폐로 한 세기의 평화를 샀다. 사후 묘호는 진종.
- 조원분 · 969–1005 · Kaifeng, China → Kaifeng, China — 태종의 아들로 상왕에 봉해졌다. 인종이 후사 없이 죽자 그 혈통을 통해 제위가 전해졌다. 영종의 조부.
- 조윤양 · 995–1059 · Kaifeng, China → Kaifeng, China — 태종의 손자로 복왕에 봉해졌다. 영종의 친아버지이며, 그를 추숭하는 예가 훗날 오래도록 이어진 복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.
- 인종 · 05/30/1010–04/30/1063 · Kaifeng, China → Kaifeng, China — 진종의 아들로 송의 황제 가운데 가장 오래 재위했다(1022~1063년). 너그럽고 학문을 숭상한 치세는 문화의 전성기로 칭송되나, 아들들이 먼저 죽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났다. 사후 묘호는 인종.
- 영종 · 02/16/1032–01/25/1067 · Kaifeng, China → Kaifeng, China — 태종의 증손으로, 후사 없는 인종의 양자가 되어 1063년 제위에 올랐다(재위 1063~1067년). 그 즉위로 제위는 조씨의 방계로 옮겨졌다. 사후 묘호는 영종(英宗).
- 신종 · 05/25/1048–04/01/1085 · Kaifeng, China → Kaifeng, China — 영종의 아들(재위 1067~1085년). 왕안석의 신법을 강력히 지지했으나, 그 개혁은 조정을 대대로 대립하는 당파로 갈라놓았다. 사후 묘호는 신종.
- 휘종 · 11/02/1082–06/04/1135 · Kaifeng, China → Wuguocheng, China — 신종의 아들(재위 1100~1126년). 빼어난 화가이자 서예가이며 예술의 후원자였으나, 정사를 소홀히 하여 송을 무방비로 만들었다. 1127년 금에 사로잡혀 동북 변방의 오국성에서 갇힌 채 죽었다. 사후 묘호는 휘종.
- 흠종 · 05/23/1100–1161 · Kaifeng, China → Yanjing, China — 휘종의 아들로, 금군이 다가오자 아버지에게서 양위를 받았다(재위 1126~1127년). 1127년 정강의 변으로 아버지와 함께 북으로 끌려가 수십 년 뒤 갇힌 채 죽었으니, 이는 북송을 끝낸 몰락이었다.
- 고종 · 06/12/1107–11/09/1187 · Kaifeng, China → Hangzhou, China — 휘종의 아들로 정강의 화를 벗어나, 1127년 임안(항주)에서 왕조를 남송으로 다시 세웠다(재위 1127~1162년). 금과 화친하고, 항금의 명장 악비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. 사후 묘호는 고종.
- 효종 · 11/27/1127–06/28/1194 · Xiuzhou, China → Hangzhou, China — 태조의 7세손으로, 아들 없는 고종의 양자가 되었다(재위 1162~1189년). 그 즉위로 제위는 두 세기 동안 태종의 계통에 있다가 건국자의 계통으로 돌아왔다. 사후 묘호는 효종이며, 흔히 남송 제일의 명군으로 평가된다.
- 광종 · 09/30/1147–09/17/1200 · Hangzhou, China → Hangzhou, China — 효종의 아들(재위 1189~1194년). 병약하고 휘둘린 군주로, 아버지와의 불화가 조정을 어지럽혀 끝내 스스로 물러나야 했다. 사후 묘호는 광종.
- 영종 · 11/19/1168–09/18/1224 · Hangzhou, China → Hangzhou, China — 광종의 아들(재위 1194~1224년). 치세는 권세를 떨친 재상들이 좌우했고, 아들들을 잃어 후사를 신하들의 손에 맡겨 정하게 했다. 사후 묘호는 영종(寧宗).
- 이종 · 01/26/1205–11/16/1264 · Shaoxing, China → Hangzhou, China — 영종의 양사자가 된 먼 종친(재위 1224~1264년). 그 치세에 송은 몽골과 손잡고 금을 멸했으나, 이내 몽골 자신과 맞서게 되었다. 사후 묘호는 이종.
- 도종 · 05/02/1240–08/12/1274 · Hangzhou, China → Hangzhou, China — 후사 없는 이종의 조카이자 양사자(재위 1264~1274년). 향락을 즐긴 군주로, 그 치하에 몽골의 정복이 양양 포위에서 송의 방어를 뚫었다. 사후 묘호는 도종.
- 단종 · 07/10/1269–05/08/1278 · Hangzhou, China → Gangzhou, China — 도종의 어린 아들로, 도성이 함락된 뒤 남으로 달아난 충신들에 의해 황제로 옹립되었다(재위 1276~1278년). 달아나던 길에 광동 연안에서 병으로 죽었으며, 그때까지도 몽골 함대에 쫓기고 있었다.
- 공제 · 11/02/1271–1323 · Hangzhou, China → China — 도종의 어린 아들로 1274~1276년에 재위하다가 임안을 몽골에 넘겨주었다. 북으로 보내졌다가 뒤에 티베트로 가 승려가 되었고, 끝내 1323년에 처형되었으니, 도성을 넘겨준 황제였다.
- 조병 · 02/12/1272–03/19/1279 · Hangzhou, China → Yamen, China — 송의 마지막 황제로, 남은 충신들에 의해 어린 나이에 즉위했다(재위 1278~1279년). 애산 해전에서 함대가 무너진 뒤, 재상 육수부가 여덟 살 어린 황제를 업고 바다에 뛰어들어 왕조는 이로써 끝났다.